3교시
변혜연 율리아
이번 수업은 침묵이라 한다
몇몇은 방으로 가고 두어 명은 넋 나간 의자처럼 앉았다
나는 침묵의 경전을 달달 외워보기로 했다
거미줄이 조용히 한 그루 나무를 감싸안고 있다
숨결보다 가벼운 실이,
어쩌다 저토록 거대한 생을 끌어안게 되었는지
밤하늘에 흠집 내 별 하나를 심는 일처럼
나리꽃 나팔 속으로 벌과 나비가 들락이며 한낮의 입맞춤을 한다
강아지풀 푸른 꼬리로 서쪽을 가리키며 서늘한 개울물 아래로 마음을 내린다
식은 이마를 닮은 풀잎도 제때를 알고 있다는 게
수업 내내 거울 속 내 얼굴을 보았다
기도문 닳은 바위 곁을 개망초가 하얗게 지킨다
다정히 불러주는 이 하나 없는 들꽃이
세상의 평화를 대신 구하고 있다, 박힌 말들을 온몸으로 빌고 있다
지나는 볕이 은행나무 꼭대기를 지펴도 나무 아래는 온통 부드러운 그늘이다
날아가던 새 떼는 저녁처럼 날아들어 눕는다
여태 내 눈은 지독한 색맹이었다 경전을 외우고 또 외웠다
숨어있던 속엣것들이 튀어나와 테두리가 꽉 차오른다
종일 나를 기다리는 가물거리던 아버지의 노래가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노래를 모르는데 3교시 내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끌어와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