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특강 2 (강철현 미카엘신부님)

by 김철우요셉 posted Mar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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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 6장 1절~4절까지를 낭독하면서 시작

"자 주님께 돌아가자...."

사순절의 전통적인 문제인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는 주제 선택

고통은 우리 삶을 따라다니는 것이고 풀어야 할 문제이고 고통 앞에 분노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죄에서 돌아서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즉 회개

 

어느 신학자가 죽음 앞에서 한 말씀

"나는 지금 하느님 심판대 앞에서  하느님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도 하느님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무죄한 아이들이 왜 죽어야하는지 묻고 싶다"

 

주교님은 자신이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을 선물

"바이올린과 순례자"

"못다한 이야기"

 

90세 이상의 연세이신 김창열주교님의 고백록 같은 책을 보고 깨달은 바 있음

주교님은 은퇴 후 석달에 한번 주교영성모임에만 참석하기 위해 외출하시는데

외출 전에 감실 앞에서 기도드리며

"주님, 당신 모시고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기도 할 때 들려오는 말씀...

"얘야, 너가 나를 모시고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데리고 간다"

---이것은 내가 능동자라고 생각하는 착각이다

주님께서 능동자이시고 나를 데리고 사셨구나...하는 깨달음

여기서 주교님은 능동자와 수동자를 바꾸어 생각하심

"오늘 내내 저를 데려다 주시고 데려 오시고...."로 기도가 바뀜

갈라티아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는 말과 연결됨

주교님의 은퇴미사에서 성경말씀

"나서야 할 때 물러날 때...." 능동과 수동

즉 물러날 때 수동의 때를 살아야 한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결정력을 잃어버리는 수동의 때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동의 때는 꼭 필요하다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활을 하시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하느님 알리는데 공생활을 바치지만

마지막 18시간은 철저히 당하는 삶을 사셨다

3년은 능동의 때이고 우리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지만 마지막 18시간의 철저한 당함이

완결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수동의 때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가치를 강조

 

내가 능동자가 될 때 죄에 빠지고 일을 그러치고 고통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주님이 능동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원하는 바를 먼저 말하고 주님을 수동자, 협력자의 위치에 놓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능동자가 되어서 갈등관계에 들어가는 수가 많다

주님이 능동자가 되고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담과 화와도 주님이 능동자가 되어 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을 누리면 되는데

자기 욕망으로 주동자 능동자가 되려고 함으로써 죄에 빠졌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동자의 삶을 사셨다

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뜻대로 사신 분이시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수동은 순명이고 순종이다

예수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수동자 역할을 하셨다

"가잘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 대표적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동자가 된다는 것은 수용과 배려에 해당한다

이것이 "수동의 영성"이라 한다

수동의 영성에는 겸손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도구에 불과하고 내 뜻 내려놓고 들으려 하는 겸손

겸손을 전제로 하는 하느님께 순명

사람과는 수용과 배려

내 생각이 현명하고 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인간관계가 깨어지는 경우 많음

내 삶의 능동자는 하느님이고 나는 수동자가 되어서 살아가면 더 평화롭다

 

성경에 의하면 고통은 인간의 죄에서 시작된다

이는 인간이 능동자가 되려고 하는데서 시작

내가 주동자가 되어서 주님을 조종하려고 한다

고통 자체는 선이 아니다 희망없는 고통은 오히려 악에 가깝다

고통이 죄의 결과라면 고통을 겪는 순간에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때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는 희망의 고통이다

시작부위의 호세아예언자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 돌아가라고 호소함

하느님은 우리를 고통에 매몰시키고자 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고통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새벽처럼 비처럼 오실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고통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를 바라신다

고통은 그들을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뜻이다

살기 위한 고통은 견디어 나갈 수 있다

예/ 수술 받는 고통. 수술 뒤에 살아남. 그러나 수술은 고통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께 돌아서기 위한 고통은 하느님의 사랑이다

호세아 예언자의 "주님을 알자"---고통을 이기는 법

고통의 섭리를 알기 위해 하느님께 다가가자

고통받음은 하느님의 종으로 드러나는 표징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면 세속과 부딛히니까 고통이 온다. 신앙은 고통을 동반한다

이에 인내와 온유로 묵묵하게 자기 소명을 다해야 한다---수동의 삶의 한 모습

 

우리가 세례를 받기 전; 스포츠 생방송을 보는 것과 같다. 안달하고 조마조마 한다

세례 받은 후에는 스포츠 재방송을 보는 것과 같다. 결과를 알고 봄으로써 과정을 즐기게 된다

하느님이 영원한 생명 주신다는 믿음으로 인생을 보면 고통은 견딜만 하다

세례 받은 자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얻는다는 믿음 속에 살아간다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앙인이다

 

죽으면....완전한 수동의 상태가 된다 (신부님들의 시신을 보면서 느낌)

죽은 순간이 완전한 수동의 상태

수동의 삶을 완전히 살아야 하느님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기력이 떨어지고 남의 도움을 받는 상태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과정이므로 수동의 때를 거부하지 마라고

잘 준비를 해야 한다

 

아따 길다.....24시간 내 복습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