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더위로 인하여】
김성련 (안나)
내가 이만큼이면 너는 저어기 저만큼
내가 한 발짝 떼면 너는 서너발자국
걷잡을 수 없는 총총함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느닷없이 되돌아 왔을 너는
야속한 늦여름 일지라
엷디엷은 바람한자락
스윽 내 몸을 휘감더니
쏜살같이 내달아 건너편 산등성이 어디메쯤
덩그랑 걸터앉아 내려오질 않느니
얄궂었던 지난여름 무더위에 허덕허덕
가쁜 숨 몰아쉬다 이제사 겨우
시원한 숨 한 번 마시렸더니
게으른 九月은 달랑 달력 한 장 넘겨 놓고
가을을 불리고 싶은 마음은 틈새만큼도 없나보다
지금도 두어 뼘 그늘 속에 내몸 숨길라치면
아직도 목덜미엔 땀방울이 송송한데
계절이 어디짬인지 가늠조차 모르겠는
하릴없는 체념의 숨소리만
포닥포닥 포닥이느니